단순암기 안 먹힌 '서울대 구술면접'

법대, 영어 지문과 국한 혼용 지문 나눠준 뒤 비교

경영대는 영어·수학 문제 낸 뒤 풀이과정 설명 요구

'퇴계 이황 선생은 고고하고 품위를 유지하는 자세로 학생들을 가르쳤다. 오늘날처럼 서양식으로 근대화된 사회에 이런 자세가 바람직한가.'(사범대), '선거에서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한 표씩 주는 1인 1표제의 정당성을 설명하라.'(사회대)

지난 12일 서울대가 2008학년도 정시 모집 일반전형 1단계 전형 합격자 등 39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면접·구술고사에 나온 문제들이다. 서울대는 모집 단위별로 10∼60분의 답변 준비시간을 먼저 준 뒤 수험생 1인당 10~15분씩 답변하도록 했다.

법대는 구술 면접에서 한국 기업이 외국인 경영자를 유치하는 것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. 또 영어 지문과 국한문 혼용 제시문을 각각 하나씩 준 뒤 두 글의 주장을 비교하라고 했다.

경영대 수험생들에게는 면접 대기실에서 60분간 영어와 수학 문제를 푼 뒤 면접실에서 15분간 답과 풀이방법을 설명하도록 했다. 영어 제시문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해외의 마이크로 크레디트(Micro Credit·무담보 소액 대출)에 관한 내용이었다. 경영대학교에 지원한 A모(19)군은 "영어 제시문에 문제까지 영어라서 당황스러웠다"며 "수학도 4문제 중 3문제가 원리를 심도 있게 묻는 문제여서 시간이 많이 부족했다"고 말했다.

인문대에선 '돈을 잃을까 봐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에피쿠로스 학파(금욕과 마음의 평정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을 편 학파)가 조언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인가' 등을 물었다. 사회대는 ?최근 한국의 선거에서 투표율이 낮은 이유 ?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한 표씩 주는 1인 1표제의 정당성 / 민주주의와 경제 성장의 관계 등이 문제로 나왔다.

자연대 생명과학부는 '필수지방산과 비타민은 몸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. 인간은 왜 이렇게 진화했는지 설명하라'고 했다.

이남렬 서울시 교육연구정보원 교육연구사는 "서울대 구술은 기본적인 원리와 독해력뿐만 아니라, 이를 바탕으로 자기 논리를 얼마나 펼 수 있는가를 보고 있는 것 같다"고 말했다.